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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출 34:10-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네가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니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


-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14)
- ~할까 하노라, ~할까봐 그렇다.(12, 15, 16)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이 된다. 제단이 된다. 그것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고 배웠다. 질투의 하나님,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그분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마음에 두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했었다. 내 모든 삶에서 하나님이 최고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다. 사람들의 인정과 연인과의 관계, 심지어 무언가를 잘해내려고 하는 마음까지도.. 

내려놓고, 포기하고, 희생하고, 버리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 안에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을 집요하게 찾아내었고, 내 속에 교묘하게 자리잡고있는 완악함과 죄성을 명확히 짚어가면서 하나님을 만나왔다. 과거에는 전혀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이러한 급진적인 헌신은 내 신앙을 자라게 했고, 자신감 넘치게했다. 또한 삶이 담겨있는 신앙을 가지도록 도왔다.

요즘은 하나님이 정말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한번도 하나님을 따라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필요한 명령들이 아닌가. 어떤 것은 하지 말라, 어떤 것은 하라. 다소 명확해보이는 이러한 명령들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것이리라. 문 잠그고 자라. 차 조심해라. 밥먹자.

하나님의 단순한 명령들은 어떠한 의도를 숨기고 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명령한 이유는 어떻게 되어버릴까봐 그런 것이다. 나중에 위협이 될까봐, 제물을 먹고 그 신들을 섬겨서 그래서 그 땅의 주민처럼 변해버릴까봐 명령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그 땅의 주민들처럼 되지말고 나 하나님의 백성처럼 살아라.'
로마 시대 유대인세계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처럼 살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도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아가면 될 것이 아닌가? 왜 이 본문은 또 다시 살아나서 이러한 합리적인 생각을 공격하는가?
세상은 복잡해졌고, 무엇이 우상이고 아닌지 모호해졌다. 나 뿐 아니라, 어느 누구의 삶을 들여다 보더라도 하나님인지 아니면 유사한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사람들은 금으로 우상을 만들지 않고, 어떤 무엇을 가르키면서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제단과 주상을 다 찍어버려라.'라는 말은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는가?
...
...


아무리 변명해봐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에
'하나님'이라 이름하고 그것을 가지고 싶은가보다.


나는 무엇에 '하나님' 이라 이름했던가.
그리고
'질투' 라 이름하는 하나님께 어떤 소리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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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벧전 1:13-21)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고 싶지만, 그것을 가로막는 욕망. 사욕이 있다. 최근에는 욕정이 왜이렇게 차오르는지 모르겠다. 현실의 누군가가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시각적인 자극이 찾아오면 그것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홀로있는 시간에 음란을 풀어낸다. 좋지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스트레스가 요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간사 시험을 준비하는 시기라서 그런지 이 상황이 예전과는 다르게 인식된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만나는 시험인 것 같다. 내면의 욕심으로 야기된 유혹. 그로인한 시험이리라. 내 마음이 만들어낸 유혹이다. 

이미 지나간 하나님의 시험은 통과했다. 그런데 내면의 욕심으로 시작된 유혹은 통과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있다. 

사욕을 본받지 말고 나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고 싶다. 하나님을 닮고싶다.

예수님은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그 문제를 언제나 이기셨다. 나도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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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우리는 제자로서
괴로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가서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 할지라도 친구가 되고,
심지어 그와 같이 되어
그들의 내면과 외면을 치유해야한다.
사회적 신분 회복에도 애써야 할 것이다.
Because Jesus Do.

세월호 4.16이 돌아왔다.
2014년을 떠올리면서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오늘은 입을 다물어야하는 날이다.

주여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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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가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돕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붕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내가 지나간 곳에는 좋지 않은 것이 남은 것 같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나쁜나무 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나쁜 나무 라기 보단, 아마 나는 그렇게 좋은 나무가 아니라는 현실을 만나고 있는 것이리라.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 익숙해지고 있다. 조금 처참하기도하고 그냥 인정이 되기도 한다.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나면 그 이후에 하는 당장의 찬양인도나 설교는 내 힘으로 하려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당장은 은혜안에서 넘어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성실하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기분과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강하게 남아있다. 나는 아마 나의 실존보다 더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의 열매는 나라는 나무로 결정된다. 내가 별로 좋지 않거나, 아주 쪼금 좋은 나무이기에 그 정도의 열매가 나는 것 뿐인데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나는 유능해지고 싶다. 더 잘 해내고 싶다. 내 나이, 나라는 나무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크고 좋은 열매를 맺고 싶다. 나무가 자랄 때까지 도무지 기다리고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빨리 거목이 되고 싶다.
이 마음이 나를 천박한 불만족 속에 남아있게 한다.

모든 나무의 주인이신 하나님. 오 나의 주여..
좁은 문으로로 들어가게 하소서. 이 천박함을 내려놓고 협착한 좁은 길로 가기 원하나이다. 지금은 열매를 맺기보단 땅 아래 어두운 곳 뿌리에서부터 영양분을 흡수할 때 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훗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열매가 맺혀서 가장 좋은 맛으로 인해 주인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좁은 문으로. 찾는 이 없는 협착한 길로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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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내가 누구를 용서하면,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다.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한다.

왜 사랑이라는 표현대신, 죄사함과 용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굳이 용서라는 지.정.의가 필요한 구체적 행동을 요청하시는가?

사랑과 용서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사랑이겠다. 용서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행동이기에 행하기 쉬울수 있다. 반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의 기도는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를 배려한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 보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다."가 더 강력하고 구체적이다. 명료한 기도이고 명료한 요청이다.


용서라는 말을 생각하면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분을 풀지 못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forgiveness. 자칫 오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든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억지로 분을 참고 화가 나지 않은 척 우리를 용서한다고 말을 하는 모습이 아닌가.
그러한 모습은 우리의 죄로 인해 왜곡된 상상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회복해야한다. 용서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마저도 용납하는 고귀한 사랑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도 모두 사랑하는 더 큰 사랑을 가리킨다.

용서는 언제 할 수 있는가? 더 큰사랑은 언제 찾아오는가?
사랑 할 수 없어서 완전한 사랑이신 하나님께 구할때에만 찾아온다. 우리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것이 우리 속으로 들어와야한다.

왜 우리는 남을 용서할 때 용서 받는가?
왜 우리는 남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가?

이 질문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질문이다.
나도 경험했던 일이라 확신있게 말할수 있다.
우리는 다른 이를 사랑하다가 한계에 봉착한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된다.
그 사랑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다가 어느새 그 사람과 같은 나를 하나님 안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기도를 하지 않아서인지. 말씀이 없어서인지 요즘엔 나의 분을 참지 못한다. 말과 표현속에서 새어나간다. 비아냥과 조소가 튀어나온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어려운 계절이다. 내게 오늘의 말씀이 필요하다.

또한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한다는 거짓된 메시지에 속아 자신에 함몰된 이들에게 이 말씀의 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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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32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42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36절).” 그러나 마침내 공포를 넘어 순종함으로, 십자가로 나아가기로 단호하게 결단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 제자들은 잠들었습니다(37절). 예수님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 하시면서 두 번을 깨웠지만 그들은 다시 잠들었습니다(37, 40절). 우리도 이렇게 잠들어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깨어서 예수님의 길에 함께하고 있습니까? 고난주간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깨어있도록 기도합시다.


1.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있으라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있으라.

2.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3.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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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나그네의 삶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다.
타인의 선처와 후대가 없으면 죽은 아내를 장사할 수 조차 없다.

나그네 삶에는 유익이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단순한 유익을 넘어서는 것이다.
먼저는 타인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된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도움을 받은 나그네는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
또, 나그네 삶의 어려움을 알기에, 과거의 나와 같은 나그네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사람이 된다.

생전 도움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그 느낌을  모른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잘 섬기는 백성의 아버지가 된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이지만)

나그네와 도움.
이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나도 살아간다.
이 말씀이 나에게 있는 캠퍼스를 향한 부르심의 한 자락을 설명한다.

캠퍼스 나그네였던 나에게 IVF가 선대해주었고 가장 좋은 것을 주었다.
그들도 나그네이면서 나를 후대해주었다.
나그네를 섬기는 나그네.
그게 나의 정체성, 한 기둥을 차지한다.

여러가지 삶의 경험을 통해
계속해서 이 가치가 마음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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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창 19:1-11)

 


나그네를 영접하는 롯. 간청. 돌이켜 들어오는 나그네.

나그네를 학대하려는 문 밖의 사람들. 폭력. 그들은 눈이 어두워 졌다.


부끄럽지만, 최근에는 묵상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수련회 때는 묵상 시간이 모자라고, 다른 말씀이 충분했었다. 여행을 가서는 하지 않았다. 설 연휴에는 놀고만 싶었다.

그래서 일까.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해와 감동이 찾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릴만한 것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기도와 묵상이 대표적이다. 책과 운동도 그렇다. 다른 사람의 삶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친구의 입장을 듣는 것도, 모두 견디기 힘들었다.

경건이 무너졌기에 견디기가 힘든건지 견디기가 힘들어거져 경건이 무너진건지 속시원하게 진단할 수는 없지만, 경건을 다시 사모하게되면 좀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하게되었다. 불만과 짜증, 많이 늘고 있다. 이 모습이 원래 내 모습은 아닐까. 거품이 다 빠져버린 김성은의 모습. 내가 사랑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오늘의 말씀에는 이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당장의 욕심과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서는 다른 사람의 고난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욕망을 채울 것을 폭력적으로 구하는 사람들. 바로 이 사람들이다.

 

롯은 나그네를 영접할 때, 오랫동안 권유하고 간청했고,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자신의 집에 머무르기를 결정할때까지 기다렸다. 인격적인 방식이고 오래걸리는 방식이다.

문 밖의 사람들은 떼로 몰려와서는 소리지르고 협박한다. 욕망을 채우는 매개가 되는 그것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문을 부수려고한다. 비인격적이고 빨리 해결되는 방식이다.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대하자. 사람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하자. 나에게도 인격적으로 대하자.

나의 욕망을 다스리자. 기다리자. 돌아보며 나로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는지 생각하자. 기다리자.

기다리자. 하나님도. 사람들도. 은혜도. 욕심도.

오래걸리지만, 선한 방식으로 살아가자.

 

주님이 나를 그렇게 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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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개역개정]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1v)

너무 영적인 말씀이다. 형이상학적이고,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어려운 말씀이다.
아담에게 명하신 것, 그것을 어기면 정녕 죽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다. 그것을 어긴 아담으로 인해 사망이 생겼다. 예수는 사망을 이는 첫 열매가 되었다.

예수는 어떠한 것을 지켰기 때문에 사망을 이겼단 말인가?
또 부활한 것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기억은 할 수 있고 언뜻 이해는 되지만, 받아들일 때 믿음이 필요하다. 아담의 일도, 그리스도의 일도 너무나 영적인 말씀이다.

2.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26v)

왜 사망을 맨 나중에 멸망하실까. 사망을 가장 먼저 해결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을까?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 까지 왕노릇 하신다고(25v) 하셨는데, 사망을 해결하기 전에 해결하는 원수들은 어떤 것들일까? 사망이 제일 커서 맨 나중에인가 아니면 사망이 제일 작기에 맨 나중에인가.

사망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 것인가. 죽음을 선포한 것은 하나님이시다. 에덴에서 인간에게 죽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다. 물론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방식이었지만, 죽음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의의 성품 때문에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셨지만, 죽음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죽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원수 사탄이 이용하기 시작하고,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원수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

원수들을 다 멸망시키고 난 후에 사망을 멸하신다.

3. 죽음이 쓰러질 때까지 싸우시는 그리스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떻게 죽음과 싸우지? 죽음과 싸운다는 것은 뭘까. 예수의 부활. 그것은 죽음과의 싸움에 대한 시작이었다. 그로 인해 전기가 돌았다고 시심 질문에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리스도는 죽음과 싸우고 있는가? 아니 이미 죽음과 한번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닌가. 본인의 부활을 통해. 승기는 이미 잡았다는 것인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죽음, 부활, 마지막 날, 강림. 되게 어렵다.


4. 예수로 인해 시작된 새로운 통치.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으로 인해 모든 질서가 회복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복종을 닮아 살아간다. 그에게 복종하는 우리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하나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 묵상은 어렵다. 예화와 해설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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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개역개정]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부활이 없다면,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것이 아무런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예수의 인생과 십자가의 죽음만으로는 부족한걸까? 바울은 다른 무엇보다 부활이 중요한 것처럼 주장하고있다. 정말 그러한가?

예수님이 생전에 부활에 대해 말하지 않고, 죽음만을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예수님이 죽으신 이후에 부활이 없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베드로와 바울에게도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어땠을까?

예수의 부활이 제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예수님의 예언이 맞았다는 기쁨이었을까?

베드로는 다 잃어버리고, 다 포기하고, 다시 생계로 돌아왔다.
바울은 기세가 등등하게 예수쟁이를 잡아 없앴다.
그들이 만난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묘하다. 배신자가 되어 예전의 삶으로 돌아온 인생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의를 마음껏 보이며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는 인생에게, 부활하신 예수가 찾아오신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인격적인 만남을 중점으로 기술되어 있지는 않다. 다분히 부활 그 자체의 의미, 영원한 삶을 선물로 받은 것에 대한 글이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며, 죽음을 이긴 사건으로 기술하지만, 그도 그러한 부활을 몸으로 알게 된 것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을 만난 시점 이후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요즘 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
그 품에 안겨 엥하고 울어 제끼고 싶다.
그게 아니더라도, 차라리 예수님이 오셔서 혼내도 좋으니
그분과 함께하고 싶다.
말뿐인 신앙으로 살아가며 냉랭해진 요즘,
예수님과 따뜻한 차 한잔 하고싶다.

충성. 예수님을 믿는 것이 점점 더 굳건해지는데.
사랑. 두려움 없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의에 충성스러웠던 바울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예수를 배신하고 실패와 허무함 속에 다시 고기잡는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가셔서 사랑을 물어보셨다.

이길승씨의 '가르쳐주세요' 반복 재생중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우린 잘 모르니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 가르쳐주세요

사랑을 받을 때 사랑을 전할 때
우리 가슴 더워지게 해주세요

예수님 보여주신 진실한 사랑을
누리기를 나누기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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