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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노래,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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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출 34:10-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네가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니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


-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14)
- ~할까 하노라, ~할까봐 그렇다.(12, 15, 16)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이 된다. 제단이 된다. 그것을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고 배웠다. 질투의 하나님,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조금이라도 그분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마음에 두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했었다. 내 모든 삶에서 하나님이 최고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다. 사람들의 인정과 연인과의 관계, 심지어 무언가를 잘해내려고 하는 마음까지도.. 

내려놓고, 포기하고, 희생하고, 버리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 안에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을 집요하게 찾아내었고, 내 속에 교묘하게 자리잡고있는 완악함과 죄성을 명확히 짚어가면서 하나님을 만나왔다. 과거에는 전혀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이러한 급진적인 헌신은 내 신앙을 자라게 했고, 자신감 넘치게했다. 또한 삶이 담겨있는 신앙을 가지도록 도왔다.

요즘은 하나님이 정말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한번도 하나님을 따라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필요한 명령들이 아닌가. 어떤 것은 하지 말라, 어떤 것은 하라. 다소 명확해보이는 이러한 명령들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것이리라. 문 잠그고 자라. 차 조심해라. 밥먹자.

하나님의 단순한 명령들은 어떠한 의도를 숨기고 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명령한 이유는 어떻게 되어버릴까봐 그런 것이다. 나중에 위협이 될까봐, 제물을 먹고 그 신들을 섬겨서 그래서 그 땅의 주민처럼 변해버릴까봐 명령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그 땅의 주민들처럼 되지말고 나 하나님의 백성처럼 살아라.'
로마 시대 유대인세계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처럼 살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도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아가면 될 것이 아닌가? 왜 이 본문은 또 다시 살아나서 이러한 합리적인 생각을 공격하는가?
세상은 복잡해졌고, 무엇이 우상이고 아닌지 모호해졌다. 나 뿐 아니라, 어느 누구의 삶을 들여다 보더라도 하나님인지 아니면 유사한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사람들은 금으로 우상을 만들지 않고, 어떤 무엇을 가르키면서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제단과 주상을 다 찍어버려라.'라는 말은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는가?
...
...


아무리 변명해봐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에
'하나님'이라 이름하고 그것을 가지고 싶은가보다.


나는 무엇에 '하나님' 이라 이름했던가.
그리고
'질투' 라 이름하는 하나님께 어떤 소리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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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벧전 1:13-21)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고 싶지만, 그것을 가로막는 욕망. 사욕이 있다. 최근에는 욕정이 왜이렇게 차오르는지 모르겠다. 현실의 누군가가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시각적인 자극이 찾아오면 그것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홀로있는 시간에 음란을 풀어낸다. 좋지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스트레스가 요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간사 시험을 준비하는 시기라서 그런지 이 상황이 예전과는 다르게 인식된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만나는 시험인 것 같다. 내면의 욕심으로 야기된 유혹. 그로인한 시험이리라. 내 마음이 만들어낸 유혹이다. 

이미 지나간 하나님의 시험은 통과했다. 그런데 내면의 욕심으로 시작된 유혹은 통과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있다. 

사욕을 본받지 말고 나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고 싶다. 하나님을 닮고싶다.

예수님은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그 문제를 언제나 이기셨다. 나도 이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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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글, 적기
참으로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구나.
까치 발로 멀리 보려해도 안개에 가려 시야가 막힌 기분일거야.

나는 무력한 내가 온전한 확신 없이 무거운 선택을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는게 언제나 무겁더라. 그리고 두렵더라.

오늘이라는 한계 내에서 최선을 선택하고자 하지만, 후회만 남을까봐 염려도 되고.

난 왜 너의 일이 남일 같지가 않을까. 생각이 날 때마다 답답하고 괴롭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아
나는 이 어려운 시간을 너와 함께 지나가고 싶다.

어둔 밤을 지나고 지금 이 바다를 건너고
나중에 고개를 돌려 지난 발자국 들을 바라보며
'그때 참 힘들었지' 하며 서로가 위안이 되고싶다.

계속 기도하고 응원할게!! 나는 너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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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우리는 제자로서
괴로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가서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 할지라도 친구가 되고,
심지어 그와 같이 되어
그들의 내면과 외면을 치유해야한다.
사회적 신분 회복에도 애써야 할 것이다.
Because Jesus Do.

세월호 4.16이 돌아왔다.
2014년을 떠올리면서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오늘은 입을 다물어야하는 날이다.

주여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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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가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돕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붕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내가 지나간 곳에는 좋지 않은 것이 남은 것 같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나쁜나무 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나쁜 나무 라기 보단, 아마 나는 그렇게 좋은 나무가 아니라는 현실을 만나고 있는 것이리라.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 익숙해지고 있다. 조금 처참하기도하고 그냥 인정이 되기도 한다.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나면 그 이후에 하는 당장의 찬양인도나 설교는 내 힘으로 하려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당장은 은혜안에서 넘어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성실하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기분과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강하게 남아있다. 나는 아마 나의 실존보다 더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의 열매는 나라는 나무로 결정된다. 내가 별로 좋지 않거나, 아주 쪼금 좋은 나무이기에 그 정도의 열매가 나는 것 뿐인데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나는 유능해지고 싶다. 더 잘 해내고 싶다. 내 나이, 나라는 나무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크고 좋은 열매를 맺고 싶다. 나무가 자랄 때까지 도무지 기다리고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빨리 거목이 되고 싶다.
이 마음이 나를 천박한 불만족 속에 남아있게 한다.

모든 나무의 주인이신 하나님. 오 나의 주여..
좁은 문으로로 들어가게 하소서. 이 천박함을 내려놓고 협착한 좁은 길로 가기 원하나이다. 지금은 열매를 맺기보단 땅 아래 어두운 곳 뿌리에서부터 영양분을 흡수할 때 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훗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열매가 맺혀서 가장 좋은 맛으로 인해 주인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좁은 문으로. 찾는 이 없는 협착한 길로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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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내가 누구를 용서하면,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다.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한다.

왜 사랑이라는 표현대신, 죄사함과 용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굳이 용서라는 지.정.의가 필요한 구체적 행동을 요청하시는가?

사랑과 용서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사랑이겠다. 용서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행동이기에 행하기 쉬울수 있다. 반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의 기도는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를 배려한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 보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다."가 더 강력하고 구체적이다. 명료한 기도이고 명료한 요청이다.


용서라는 말을 생각하면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분을 풀지 못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forgiveness. 자칫 오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든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억지로 분을 참고 화가 나지 않은 척 우리를 용서한다고 말을 하는 모습이 아닌가.
그러한 모습은 우리의 죄로 인해 왜곡된 상상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회복해야한다. 용서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마저도 용납하는 고귀한 사랑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도 모두 사랑하는 더 큰 사랑을 가리킨다.

용서는 언제 할 수 있는가? 더 큰사랑은 언제 찾아오는가?
사랑 할 수 없어서 완전한 사랑이신 하나님께 구할때에만 찾아온다. 우리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것이 우리 속으로 들어와야한다.

왜 우리는 남을 용서할 때 용서 받는가?
왜 우리는 남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가?

이 질문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질문이다.
나도 경험했던 일이라 확신있게 말할수 있다.
우리는 다른 이를 사랑하다가 한계에 봉착한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된다.
그 사랑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다가 어느새 그 사람과 같은 나를 하나님 안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기도를 하지 않아서인지. 말씀이 없어서인지 요즘엔 나의 분을 참지 못한다. 말과 표현속에서 새어나간다. 비아냥과 조소가 튀어나온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어려운 계절이다. 내게 오늘의 말씀이 필요하다.

또한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한다는 거짓된 메시지에 속아 자신에 함몰된 이들에게 이 말씀의 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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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32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42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36절).” 그러나 마침내 공포를 넘어 순종함으로, 십자가로 나아가기로 단호하게 결단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 제자들은 잠들었습니다(37절). 예수님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 하시면서 두 번을 깨웠지만 그들은 다시 잠들었습니다(37, 40절). 우리도 이렇게 잠들어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깨어서 예수님의 길에 함께하고 있습니까? 고난주간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깨어있도록 기도합시다.


1.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있으라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있으라.

2.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3.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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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나그네의 삶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다.
타인의 선처와 후대가 없으면 죽은 아내를 장사할 수 조차 없다.

나그네 삶에는 유익이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단순한 유익을 넘어서는 것이다.
먼저는 타인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된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도움을 받은 나그네는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
또, 나그네 삶의 어려움을 알기에, 과거의 나와 같은 나그네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사람이 된다.

생전 도움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그 느낌을  모른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잘 섬기는 백성의 아버지가 된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이지만)

나그네와 도움.
이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나도 살아간다.
이 말씀이 나에게 있는 캠퍼스를 향한 부르심의 한 자락을 설명한다.

캠퍼스 나그네였던 나에게 IVF가 선대해주었고 가장 좋은 것을 주었다.
그들도 나그네이면서 나를 후대해주었다.
나그네를 섬기는 나그네.
그게 나의 정체성, 한 기둥을 차지한다.

여러가지 삶의 경험을 통해
계속해서 이 가치가 마음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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