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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글, 적기
참으로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구나.
까치 발로 멀리 보려해도 안개에 가려 시야가 막힌 기분일거야.

나는 무력한 내가 온전한 확신 없이 무거운 선택을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는게 언제나 무겁더라. 그리고 두렵더라.

오늘이라는 한계 내에서 최선을 선택하고자 하지만, 후회만 남을까봐 염려도 되고.

난 왜 너의 일이 남일 같지가 않을까. 생각이 날 때마다 답답하고 괴롭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아
나는 이 어려운 시간을 너와 함께 지나가고 싶다.

어둔 밤을 지나고 지금 이 바다를 건너고
나중에 고개를 돌려 지난 발자국 들을 바라보며
'그때 참 힘들었지' 하며 서로가 위안이 되고싶다.

계속 기도하고 응원할게!! 나는 너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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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우리는 제자로서
괴로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가서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 할지라도 친구가 되고,
심지어 그와 같이 되어
그들의 내면과 외면을 치유해야한다.
사회적 신분 회복에도 애써야 할 것이다.
Because Jesus Do.

세월호 4.16이 돌아왔다.
2014년을 떠올리면서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오늘은 입을 다물어야하는 날이다.

주여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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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가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돕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붕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내가 지나간 곳에는 좋지 않은 것이 남은 것 같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나쁜나무 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나쁜 나무 라기 보단, 아마 나는 그렇게 좋은 나무가 아니라는 현실을 만나고 있는 것이리라.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에 익숙해지고 있다. 조금 처참하기도하고 그냥 인정이 되기도 한다.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나면 그 이후에 하는 당장의 찬양인도나 설교는 내 힘으로 하려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당장은 은혜안에서 넘어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성실하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기분과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강하게 남아있다. 나는 아마 나의 실존보다 더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의 열매는 나라는 나무로 결정된다. 내가 별로 좋지 않거나, 아주 쪼금 좋은 나무이기에 그 정도의 열매가 나는 것 뿐인데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나는 유능해지고 싶다. 더 잘 해내고 싶다. 내 나이, 나라는 나무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크고 좋은 열매를 맺고 싶다. 나무가 자랄 때까지 도무지 기다리고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빨리 거목이 되고 싶다.
이 마음이 나를 천박한 불만족 속에 남아있게 한다.

모든 나무의 주인이신 하나님. 오 나의 주여..
좁은 문으로로 들어가게 하소서. 이 천박함을 내려놓고 협착한 좁은 길로 가기 원하나이다. 지금은 열매를 맺기보단 땅 아래 어두운 곳 뿌리에서부터 영양분을 흡수할 때 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훗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열매가 맺혀서 가장 좋은 맛으로 인해 주인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좁은 문으로. 찾는 이 없는 협착한 길로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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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내가 누구를 용서하면,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다.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한다.

왜 사랑이라는 표현대신, 죄사함과 용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굳이 용서라는 지.정.의가 필요한 구체적 행동을 요청하시는가?

사랑과 용서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사랑이겠다. 용서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행동이기에 행하기 쉬울수 있다. 반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의 기도는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를 배려한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 보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다."가 더 강력하고 구체적이다. 명료한 기도이고 명료한 요청이다.


용서라는 말을 생각하면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분을 풀지 못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forgiveness. 자칫 오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든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억지로 분을 참고 화가 나지 않은 척 우리를 용서한다고 말을 하는 모습이 아닌가.
그러한 모습은 우리의 죄로 인해 왜곡된 상상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회복해야한다. 용서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마저도 용납하는 고귀한 사랑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도 모두 사랑하는 더 큰 사랑을 가리킨다.

용서는 언제 할 수 있는가? 더 큰사랑은 언제 찾아오는가?
사랑 할 수 없어서 완전한 사랑이신 하나님께 구할때에만 찾아온다. 우리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새로운 것이 우리 속으로 들어와야한다.

왜 우리는 남을 용서할 때 용서 받는가?
왜 우리는 남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가?

이 질문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질문이다.
나도 경험했던 일이라 확신있게 말할수 있다.
우리는 다른 이를 사랑하다가 한계에 봉착한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된다.
그 사랑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다가 어느새 그 사람과 같은 나를 하나님 안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기도를 하지 않아서인지. 말씀이 없어서인지 요즘엔 나의 분을 참지 못한다. 말과 표현속에서 새어나간다. 비아냥과 조소가 튀어나온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어려운 계절이다. 내게 오늘의 말씀이 필요하다.

또한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한다는 거짓된 메시지에 속아 자신에 함몰된 이들에게 이 말씀의 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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