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Q.T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창 19:1-11)

 


나그네를 영접하는 롯. 간청. 돌이켜 들어오는 나그네.

나그네를 학대하려는 문 밖의 사람들. 폭력. 그들은 눈이 어두워 졌다.


부끄럽지만, 최근에는 묵상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수련회 때는 묵상 시간이 모자라고, 다른 말씀이 충분했었다. 여행을 가서는 하지 않았다. 설 연휴에는 놀고만 싶었다.

그래서 일까.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해와 감동이 찾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릴만한 것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기도와 묵상이 대표적이다. 책과 운동도 그렇다. 다른 사람의 삶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친구의 입장을 듣는 것도, 모두 견디기 힘들었다.

경건이 무너졌기에 견디기가 힘든건지 견디기가 힘들어거져 경건이 무너진건지 속시원하게 진단할 수는 없지만, 경건을 다시 사모하게되면 좀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하게되었다. 불만과 짜증, 많이 늘고 있다. 이 모습이 원래 내 모습은 아닐까. 거품이 다 빠져버린 김성은의 모습. 내가 사랑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오늘의 말씀에는 이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당장의 욕심과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서는 다른 사람의 고난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욕망을 채울 것을 폭력적으로 구하는 사람들. 바로 이 사람들이다.

 

롯은 나그네를 영접할 때, 오랫동안 권유하고 간청했고,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자신의 집에 머무르기를 결정할때까지 기다렸다. 인격적인 방식이고 오래걸리는 방식이다.

문 밖의 사람들은 떼로 몰려와서는 소리지르고 협박한다. 욕망을 채우는 매개가 되는 그것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문을 부수려고한다. 비인격적이고 빨리 해결되는 방식이다.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대하자. 사람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하자. 나에게도 인격적으로 대하자.

나의 욕망을 다스리자. 기다리자. 돌아보며 나로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는지 생각하자. 기다리자.

기다리자. 하나님도. 사람들도. 은혜도. 욕심도.

오래걸리지만, 선한 방식으로 살아가자.

 

주님이 나를 그렇게 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0 0
그의 이야기/Q.T

[개역개정]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1v)

너무 영적인 말씀이다. 형이상학적이고,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어려운 말씀이다.
아담에게 명하신 것, 그것을 어기면 정녕 죽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다. 그것을 어긴 아담으로 인해 사망이 생겼다. 예수는 사망을 이는 첫 열매가 되었다.

예수는 어떠한 것을 지켰기 때문에 사망을 이겼단 말인가?
또 부활한 것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기억은 할 수 있고 언뜻 이해는 되지만, 받아들일 때 믿음이 필요하다. 아담의 일도, 그리스도의 일도 너무나 영적인 말씀이다.

2.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26v)

왜 사망을 맨 나중에 멸망하실까. 사망을 가장 먼저 해결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을까?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 까지 왕노릇 하신다고(25v) 하셨는데, 사망을 해결하기 전에 해결하는 원수들은 어떤 것들일까? 사망이 제일 커서 맨 나중에인가 아니면 사망이 제일 작기에 맨 나중에인가.

사망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 것인가. 죽음을 선포한 것은 하나님이시다. 에덴에서 인간에게 죽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다. 물론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방식이었지만, 죽음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의의 성품 때문에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셨지만, 죽음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죽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원수 사탄이 이용하기 시작하고,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원수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

원수들을 다 멸망시키고 난 후에 사망을 멸하신다.

3. 죽음이 쓰러질 때까지 싸우시는 그리스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떻게 죽음과 싸우지? 죽음과 싸운다는 것은 뭘까. 예수의 부활. 그것은 죽음과의 싸움에 대한 시작이었다. 그로 인해 전기가 돌았다고 시심 질문에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리스도는 죽음과 싸우고 있는가? 아니 이미 죽음과 한번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닌가. 본인의 부활을 통해. 승기는 이미 잡았다는 것인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죽음, 부활, 마지막 날, 강림. 되게 어렵다.


4. 예수로 인해 시작된 새로운 통치.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으로 인해 모든 질서가 회복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복종을 닮아 살아간다. 그에게 복종하는 우리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하나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 묵상은 어렵다. 예화와 해설집이 필요하다.

0 0
그의 이야기/Q.T

[개역개정]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부활이 없다면,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것이 아무런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예수의 인생과 십자가의 죽음만으로는 부족한걸까? 바울은 다른 무엇보다 부활이 중요한 것처럼 주장하고있다. 정말 그러한가?

예수님이 생전에 부활에 대해 말하지 않고, 죽음만을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예수님이 죽으신 이후에 부활이 없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베드로와 바울에게도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어땠을까?

예수의 부활이 제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예수님의 예언이 맞았다는 기쁨이었을까?

베드로는 다 잃어버리고, 다 포기하고, 다시 생계로 돌아왔다.
바울은 기세가 등등하게 예수쟁이를 잡아 없앴다.
그들이 만난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묘하다. 배신자가 되어 예전의 삶으로 돌아온 인생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의를 마음껏 보이며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는 인생에게, 부활하신 예수가 찾아오신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인격적인 만남을 중점으로 기술되어 있지는 않다. 다분히 부활 그 자체의 의미, 영원한 삶을 선물로 받은 것에 대한 글이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며, 죽음을 이긴 사건으로 기술하지만, 그도 그러한 부활을 몸으로 알게 된 것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을 만난 시점 이후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요즘 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
그 품에 안겨 엥하고 울어 제끼고 싶다.
그게 아니더라도, 차라리 예수님이 오셔서 혼내도 좋으니
그분과 함께하고 싶다.
말뿐인 신앙으로 살아가며 냉랭해진 요즘,
예수님과 따뜻한 차 한잔 하고싶다.

충성. 예수님을 믿는 것이 점점 더 굳건해지는데.
사랑. 두려움 없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의에 충성스러웠던 바울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예수를 배신하고 실패와 허무함 속에 다시 고기잡는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가셔서 사랑을 물어보셨다.

이길승씨의 '가르쳐주세요' 반복 재생중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우린 잘 모르니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 가르쳐주세요

사랑을 받을 때 사랑을 전할 때
우리 가슴 더워지게 해주세요

예수님 보여주신 진실한 사랑을
누리기를 나누기를 원해요

0 0
1 2 3 4 5 6 7 ··· 24
블로그 이미지

나의 목소리

구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