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Q.T

[개역개정]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21v)

너무 영적인 말씀이다. 형이상학적이고,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어려운 말씀이다.
아담에게 명하신 것, 그것을 어기면 정녕 죽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다. 그것을 어긴 아담으로 인해 사망이 생겼다. 예수는 사망을 이는 첫 열매가 되었다.

예수는 어떠한 것을 지켰기 때문에 사망을 이겼단 말인가?
또 부활한 것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기억은 할 수 있고 언뜻 이해는 되지만, 받아들일 때 믿음이 필요하다. 아담의 일도, 그리스도의 일도 너무나 영적인 말씀이다.

2.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26v)

왜 사망을 맨 나중에 멸망하실까. 사망을 가장 먼저 해결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을까?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에 둘 때 까지 왕노릇 하신다고(25v) 하셨는데, 사망을 해결하기 전에 해결하는 원수들은 어떤 것들일까? 사망이 제일 커서 맨 나중에인가 아니면 사망이 제일 작기에 맨 나중에인가.

사망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 것인가. 죽음을 선포한 것은 하나님이시다. 에덴에서 인간에게 죽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다. 물론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방식이었지만, 죽음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의의 성품 때문에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셨지만, 죽음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죽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원수 사탄이 이용하기 시작하고,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원수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

원수들을 다 멸망시키고 난 후에 사망을 멸하신다.

3. 죽음이 쓰러질 때까지 싸우시는 그리스도.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떻게 죽음과 싸우지? 죽음과 싸운다는 것은 뭘까. 예수의 부활. 그것은 죽음과의 싸움에 대한 시작이었다. 그로 인해 전기가 돌았다고 시심 질문에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리스도는 죽음과 싸우고 있는가? 아니 이미 죽음과 한번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닌가. 본인의 부활을 통해. 승기는 이미 잡았다는 것인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죽음, 부활, 마지막 날, 강림. 되게 어렵다.


4. 예수로 인해 시작된 새로운 통치.

예수 그리스도의 복종으로 인해 모든 질서가 회복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복종을 닮아 살아간다. 그에게 복종하는 우리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하나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 묵상은 어렵다. 예화와 해설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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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개역개정]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부활이 없다면,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것이 아무런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인가?

예수의 인생과 십자가의 죽음만으로는 부족한걸까? 바울은 다른 무엇보다 부활이 중요한 것처럼 주장하고있다. 정말 그러한가?

예수님이 생전에 부활에 대해 말하지 않고, 죽음만을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예수님이 죽으신 이후에 부활이 없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베드로와 바울에게도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어땠을까?

예수의 부활이 제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예수님의 예언이 맞았다는 기쁨이었을까?

베드로는 다 잃어버리고, 다 포기하고, 다시 생계로 돌아왔다.
바울은 기세가 등등하게 예수쟁이를 잡아 없앴다.
그들이 만난 사람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묘하다. 배신자가 되어 예전의 삶으로 돌아온 인생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의를 마음껏 보이며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는 인생에게, 부활하신 예수가 찾아오신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인격적인 만남을 중점으로 기술되어 있지는 않다. 다분히 부활 그 자체의 의미, 영원한 삶을 선물로 받은 것에 대한 글이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며, 죽음을 이긴 사건으로 기술하지만, 그도 그러한 부활을 몸으로 알게 된 것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을 만난 시점 이후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요즘 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
그 품에 안겨 엥하고 울어 제끼고 싶다.
그게 아니더라도, 차라리 예수님이 오셔서 혼내도 좋으니
그분과 함께하고 싶다.
말뿐인 신앙으로 살아가며 냉랭해진 요즘,
예수님과 따뜻한 차 한잔 하고싶다.

충성. 예수님을 믿는 것이 점점 더 굳건해지는데.
사랑. 두려움 없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의에 충성스러웠던 바울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예수를 배신하고 실패와 허무함 속에 다시 고기잡는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가셔서 사랑을 물어보셨다.

이길승씨의 '가르쳐주세요' 반복 재생중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우린 잘 모르니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 가르쳐주세요

사랑을 받을 때 사랑을 전할 때
우리 가슴 더워지게 해주세요

예수님 보여주신 진실한 사랑을
누리기를 나누기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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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Q.T

고린도전서 11장 [개역개정]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 ~위하여 지음 받다. ~에게서 나다
- 머리.

9v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았다고 밝힌다.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았던가?

11v에는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말하며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에게서 난 동일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 당시의 문화적 관습이 ​드러나기 때문에 의아한 점이 생긴다. 머리에 쓰고 벗고.. 아 모르겠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생각하게 만들었던 구절은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은 내용을 담은 구절이다. 여자와 남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고민하게 되었던 것은 누군가를 위하여 지음받았다는 표현이다.

누군가를 위하여 지음 받은 것.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까? 여기서는 여자들에게 남자들을 위하여 지음 받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이 여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바로 아멘 할 수 있었을까?

날 때부터 다른 사람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 그렇게 지음 받았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자기의 주장없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그 목적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니...

오늘 이 말씀이 나에게 찾아온다. 여자와 남자의 얘기가 아니라, 사람이 지으심을 받은 이유에 대한 것으로 찾아온다.

요즘 나의 삶은 부서지는 중이다. 무엇하나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수준이 아니라 한학기 동안 계속 그래왔다. 내가 할 일들도 많아지면서, 책임감도 늘어났다. 관계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의무감이 드는 사람과의 관계도 많아졌다.

어느 것하나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하는데 또 다음에 해야할 것들이 생긴다. 적어도 그 스트레스에서는 벗어나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쉬려고 누웠다가 너무 많이 쉬어버리곤 했다. 내 행동들에 대한 불만, 너무 많은 일들이 주어진 것에 대한 원망들이 내 안에 공존한다.

내가 해야할 일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삶이 눈에 밟힌다. 내 인생의 길도 잘 모르겠고, 나도 잘 못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인생이 눈에 들어온다. 기댈 곳이 없어 지쳐 있는 그들을 바라본다. 내 코가 석자지 하면서 못 본척도 했었다.

내 한계에 부딫혀 괴로워 하고 있고, 이 괴로움만으로도 충분한데, 오늘 말씀이 날 더 불편하게 한다.

사람은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지음 받았다는 것. 이 말씀이 날 불편하게 한다. 욕이 앞니까지 나 와서 발음이 새려던 차에 입을 닫았다.

부담스럽다. 내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을 누군가가 침범하는 것이 싫다. 나만의 공간에서 다들 사라져줬으면 좋겠는 심정이 요즘 솔직한 심정이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들은 남겨두고, 그게 아닌 관계들은 다 정리하고 싶다.

내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힘들면 해야하는 일들도 몇 일씩 뒤로 옮겨지고, 내가 컨디션 좋은 날에는 모두가 모여 파티를 벌이고 싶다. 모든 것을 내 위주로 바꾸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내 일에 대해서 적어도 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잘 해내지 못했다는 실패감이 나를 좌절과 낙망, 단절과 중독으로 이끌고 있다. 사실 누군가를 위해 지어졌다는 것, 쉽게 말해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따라야한다는 것 자체는 싫지 않다. 나도 동의한다. 실제로 그렇게 살고 싶다.

오늘 이 말씀이 힘든 이유는 내가 그렇게 사랑할 여력이 있을 때에만이 아니라 내가 내 앞가림도 못할 때에도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답답한 의무감과 책임감 때문이다. 정작 나도 나그네인데 다른 나그네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나는 3번에 4번 날개를 가진 사람이다. 유능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위해 결정한다. 어떤 길이 앞으로 좋을 길이 될지 빠르게 판단하여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을 찾아낸다. 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참 어려운 사람이다.

내가 힘들때에는 나 자신만을 돌보고 싶단 말이 다!!!! 이것이 내 영혼의 외침이다. 기도가 그렇게 나온다. 오늘 묵상을 보면 주저리주저리 많은 얘기를 하고 있지만 골자는 나 힘들 땐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싶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지금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 마음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받은 피조물인 나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 선한 일 즉,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것을 힘들어한다. 내 영혼의 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야할 때이다. 나 자신을 사역해야하는 시간이다.

주여 오늘도 나를 가르치소서. 의의 길로 인도하소서.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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